상단로고
홈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운영진에게문의
동문회소개
동문회장 인사
동문회 연혁
동문회칙
임원명단
동문주소록
불어교육과 연혁
동문소식
발전기금 기탁
공지사항
경조사
동문 동정
소식지
사랑방
동문회원
불어교육과
사진첩
방명록
자료실
공유자료
전공자료
사이트맵
관련사이트
사이트맵
0
10,881

> 동문회소개 > 동문회 연혁
1) 70년대 : 초창기
1959년 창과에 이어 동문이 배출되면서 당연히 뒤따랐음직한 동문회의 결성과 활동은 하지만 상당한 잉태의 세월이 필요했다. 동문회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70년대 초반의 일이니까 말이다. 사회에 진출한 초기 동문들이 동문회를 조직할만한 여건을 갖추기까지는 그만큼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의 일들도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어서 정확한 년도와 상황을 기억해내기조차 쉽지 않다.

초대회장 : 서영하 동문의 회고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해서) 규모는 작았지만 당시의 동문회는 참석률이 높았고 정기적인 모임 이외에도 간간이 만나서 우의를 나누었으며, 그럴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만 해도 교직에 있는 동문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문회가 빛을 보기까지는 모교의 조교를 지내고 육사 교관으로 있던 최순목 동문(65학번)의 헌신적인 노력이 컸다. 최 동문은 동문회 창립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를 담당하고 또 초대총무를 맡아 서영하 초대회장과 함께 동문회의 초석을 마련했다.

2) 80년대
그 이후로 한동안 동문회장직은 모교에 출강 또는 재직하는 동문들이 도맡다시피 했다. 우선,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당시 아주대에 근무하며 모교에 출강하던 정연풍 동문(60학번, 작고)이 서영하 초대회장에 이어 회장직을 맡았다. 이무렵 어느 때인가 당시 회장이던 정연풍 동문이 한달 강사료를 쾌척해서 동문 소식지를 만드는데 부담했다고 한다.

정연풍 동문 다음으로는, 불어과 출신 중 최초로 모교에 부임한 이형식 동문(65학번)이 동문회장을 맡아 우리사회의 격동기였던 80년대 초·중반을 지나는 동안 동문회의 명맥을 이었다.

3) 90년대 : 부흥기
동문회 활동이 실질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건국대에 재임하면서 모교에 출강하던 신곽균 동문(65학번)이 1987년 회장으로 선출되고 임원진을 개편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임기 2년의 회장단이 정기적으로 구성되고 매년 동문주소록을 제작·배포하는 한편 동문회보를 발행하여 동문회 소식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이 때부터 동문회의 활동도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89년에는 안정길 동문(66학번)이 회장으로 선출되어 여러 방면에 의욕적으로 동문회를 이끌었다. 특히 이 때에 동문회의 주관으로 프랑스어문교육학회가 발족되어 제 1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동문회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초기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출범한 이 학회는 매년 프랑스어문교육과 관련된 학술대회를 갖고 학술지 「프랑스어문교육」을 발간하고 있다. 94년에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록하여 명실상부한 전국지로서의 위상을 갖추었으며, 97에는 ISSN을 부여받아 장차 국제학술지로 발돋움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였다. 또한 99년부터는 연 2회 발간하게 됨으로써 올 11월에 제 8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문회 창립을 위해 애쓴 최순목 동문이 안정길 동문에 이어 1991년부터 2년 동안 동문회장직을 맡았다. 이 기간 중에는 갓 발족한 프랑스어문교육학회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한편 동문들간의 친목을 더욱 돈독히 하기위해 동문 테니스 대회와 바둑 대회도 개최했다. 상당수의 동문들이 매년 가을 모교에서 만나 기량을 겨루고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최순목 회장의 임기만료와 함께 동문회장직은 다시 고학번으로 옮겨갔다. 염도균 동문(59학번)이 93년에서 95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회장을 맡았고 뒤를 이은 이기태 동문은 2년 임기후에 다시 회장에 선출되어 99년 초까지 4년에 걸쳐 동문회장을 지냈다. 그동안 신년하례식, 동문회보 및 주소록 발행, 동문 등산대회 등 갖가지 동문회 활동이 확고한 틀을 갖추게 되었고 이런 맥락 속에서 99년 초에 정인형 동문(65학번)이 새 회장직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동문회 재불 지부
한편 Paris에서도 현재 많은 수의 불어교육과 동문들이 유학, 연수, 주재원, 공무파견 등 여러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1980년에 들어서 유학생 및 지사 파견원, 공관 주재원이 증가하면서 재불 동문도 30여명으로 수적 증가를 했으며 정화연 동문(66학번-당시 주불 한국대사관), 조홍래 동문(68학번-유학)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다가 1986년에는 재불 불어교육과 동문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초대회장-정인형(65학번), 총무-조항덕(74학번))
한 때 지방에 있는 동문을 포함, 총회원이 35명에 달했으며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회원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별히 박옥줄 선생님을 비롯한 모교 선생님들의 Paris 방문은 동문들이 모이고 단합하는데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재불 동문회는 1989년 박수정(66학번) 회장, 심봉섭(78학번) 총무로 바톤을 이었고 1992년에 조홍래(68학번) 회장, 1995년 이광정(67학번) 회장을 거쳐 1998년 12월 15일 정기 총회에서 이근(69학번) 회장, 이태원(86학번) 총무를 선출하고 새로운 주소록을 정비하여 본부인 모교 불어교육과 동문회와 돈독한 관계로 협조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현 회원-21명)
재불 동문회 회장은 불어교육과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4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도 많은 재불 동문들이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하단로고
CONTACT US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