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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회소개 > 불어교육과 연혁
1. 학과 창설과 폐과 그리고 부활

서울사대에 불어교육과가 창설된 것은 1959년이다. 당시 사대에는 외국어교육과라는 이름으로 영어 전공의 학생들만 모집했는데, 그 해 3월 이 학과가 영어, 독어, 불어전공으로 나뉘어 신입생을 모집함으로써 불어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첫해 불어과는 20명의 신입생을 맞아들이는 기쁨을 맛보았으며 교수는 박옥줄 선생님―현재 명예교수―혼자셨다. 그러나 1962년 군사정권 하의 문교부는 사대 불어과와 독어과의 폐과를 느닷없이 결정한다. 학과가 바야흐로 자리를 잡아가던 참에 당한 이 조치로 재학생들은 황당하게도 다른 학과로 전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년의 공백기를 넘기고 학과는 1964년 부활했다. 사대 당국의 노력과 학생들의 열의가 당국을 설득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불어과 졸업생들이 사회에 기여한 바를 볼 때 대단히 다행스런 일이었다. 학과 정원은 초창기 15명에서 한동안 20명으로 유지되다가 80년대 초반에는 한 때는 25명을 넘어간 적도 있으나, 89년부터 15명으로 축소되었다. 불어과는 교직으로 진출할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지원률이 평균 5대 1로 계속 높은 편이었고 입학생들의 성적도 우수했다. 경쟁률이 무려 20대 1에 가까웠던 해도 있었다. 80년대 들어 입시정책의 변화로 경쟁률은 2∼3대 1을 보이고 있으며 82년도부터 입학생의 절대 다수를 여학생이 차지하고 있다.


2. 성장과 발전

1) 교수진용의 변화

창설 당시 전임교수로 부임한 박옥줄 교수는 초창기의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과를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 62년 정명환 교수의 취임으로 전임교수는 2명으로 늘어났다. 63년 박 교수가 한국외국어대학으로 떠나고 65년 이환 교수가 부임하였다. 박 교수가 67년 복직하여 불어과는 비로소 완전한 교수진용을 갖추게 된다. 세 교수는 우연히도 문리대 불문과의 동기동창이다. 세 교수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향후 학과발전을 위한 토대를 쌓았다. 69년 정명환 교수가 교양과정부로 보직을 옮기고 71년 유평근 교수가 부임했으며, 73년 곽광수 교수가 부임했다. 79년 이형식 교수가 본과 출신으로는 처음 전임교수로 부임하고 82년 두 번째로 정연풍 교수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993년 가을, 정연풍 교수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94년 2월에는 불어과의 산 역사 박옥줄 선생이 정년퇴임을 하였다. 그 빈자리를 심봉섭 교수(94년 부임)와 장승일 교수(95년 부임)가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6년 8월에는 곽광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시고 2007년 9월 박동열 교수가 본 과에 부임하였다.

2) 대학원 연혁

1963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이 설립되면서 사범대학에 대학원 과정이 처음으로 생기게 되었고, 1975년 2월에는 교육대학원(야간)이 폐지되면서 사범대학 대학원 과정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1985년 11월에 박사과정이 인가되어 이듬해인 1986년 첫 입학생을 맞으면서 명실상부한 대학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불어교육과에서는 67년도에 이기태 동문이 처음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것을 필두로 현재까지 96명의 석사를 배출했고, 석사수료 및 재학생을 포함하여 60명이 계속해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또한 박사과정에서는 김동규 동문을 시작으로 10명의 박사를 탄생시켰고, 19명의 과정 수료자 및 재학생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3) 학풍

불어과는 서울대학교의 어떤 학과보다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유지하였다. 이는 학문의 배경이 프랑스어문학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으나 교수진용이 권위주의의 시대에도 권위적인 모습을 전혀 띄지 않았고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 까닭이다. 표현의 자유가 봉쇄 당하던 시절, 학생들은 강의실 안에서의 교육보다 '교실밖 강의'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박옥줄 교수는 학생시절의 진보적인 사상에 프랑스적인 가치를 더하여 데카르트적인 이성으로 강의를 하다가도 교실 밖에서는 친구처럼, 동지처럼 제자들의 토론에 참여하고 좌중을 주도하였다.
사실 그의 '교실밖 강의'에 가장 많은 청강생이 모였다. 정명환 교수는 서슬 퍼런 독재치하에서도 학생들에게 자유, 사회정의와 연대 등의 정신을 가르치고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개인적인 고초를 겪기도 했다. 유학시절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공부를 한 정연풍 교수는 그 엄혹한 유신체제하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련된 프랑스 역사나 문학을 텍스트로 선택하기도 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강의실 밖 강의 때는 울분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가장 학자다운 자세로 설익고 건방진 학생들을 무섭게 닦달한 곽광수 교수, 체득한 '자유'를 그대로 이어 살고 있는 이형식 교수 등이 만들어 온 불어과의 학풍은 음으로 양으로 졸업생들의 진로와 활동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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